제목 LCD 모듈 생산 국내 1위 삼성전자 가는 곳 우리도 간다 날짜 201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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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863 벤처DTC.pdf    


액정표시장치 탄탄한 기술력, 삼성전자 위탁가공회사 ‘한 우물’ 결실


디스플레이테크(DTC)의 현재는 벤처기업의 미래이자 동반성장의 표본으로 삼을 만하다. 1998년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현재 임직원 400여 명, 연 매출 3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경기 안성과 충남 천안에 생산 공장을 갖췄으며, 경기 판교에 번듯한 사옥도 마련했다. 박윤민(50) DTC 대표는 “이 모든 성과가 삼성전자라는 한 우물을 판 결과”라고 말한다.
DTC는 액정표시장치(LCD) 모듈을 설계·생산하는 업체로,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PC 등에 사용하는 중소형 LCD 패널 후공정 및 모듈화 작업도 맡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매달 4000만 대 정도가 생산되는데,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를 사용하는 프리미엄급 1000만 대를 제외한 LCD 제품 3000만 대 가운데 약 15%가 DTC를 거친다고 보면 된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벤처 설립
DTC는 2003년 처음 삼성전자에 흑백 LCD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거래처를 삼성전자로 단일화했고,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11월 6일 DTC가 공시한 바에 따르면, 3분기 매출액은 671억73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1% 늘었다. 영업이익도 46억95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7%나 증가했다.
박 대표는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전자(현 KEC)에 입사했다. 반도체 연구원이자 프로젝트 총책임자로 5년간 일했는데, 그 무렵 회사가 LCD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LCD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LCD 제조라인 근무를 자청했다. 액정에 번쩍번쩍 나타나는 화상에 한마디로‘꽂혔던’ 것이다. LCD 매력에 푹 빠진 그는 LCD 패널에 숫자와 문자, 그래픽 등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LCD 모듈을 직접 개발했다.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LCD 구동용 집적회로(IC)와 백라이트를 작고 가볍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유리에 직접 장착할 수 있는 칩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2년여 동안 LCD ‘한 우물’만 판 끝에 거둔, 일본 기업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쾌거였다.
업계 스타가 된 그는 더 큰 도전을 위해 1996년 당시 대우 계열사 오리온전기로 옮겼다. 그런데 이듬해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98년 오리온전기 내 LCD사업부 자체가 없어졌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것이다.
LCD가 선보일 환상적인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벤처기업 DTC를 설립했다. LCD 모듈에 관한 한 그가 최고 실력자임을 아는 중소 휴대전화 사업자들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LCD 모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최초의 벤처기업으로 매출은 꾸준하게 이어졌으나, 문제는 대금 회수였다. 휴대전화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소·중견기업이 난립하던 때라 매출의 10% 넘게 대금을 회수할 수 없었다.
 
개발 단계부터 꾸준히 기술 교류
그러던 차에 삼성전자가 손을 내밀었다. 2003년 대형 LCD만 생산하던 삼성전자가 모바일용 박막트랜지스터(TFT) LCD 시장에 뛰어들면서 작지만 실력 있는 DTC에게 파트너 제의를 한 것이다. DTC가 자체 개발한 흑백 LCD 모듈을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LCD 패널 후공정도 맡기로 했다. 삼성전자 위탁가공회사가 되면서 박 대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삼성 외의 크고 작은 거래처를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삼성전자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모바일시장에 뛰어든 중소업체가 많았지만, 그는 기술력이나 대금 회수 실적 등에 비춰볼 때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리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거의 맞아떨어졌다.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위해 박 대표는 삼성전자와 맺은 납품계약서를 들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안성에 공장을 짓고, 설비를 사들였다. 그는 “당시 삼성전자가 직접 투자자금을 대주진 않았지만 투자비용을 충분히 고려해 물량을 주문하고 거래를 계속 이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삼성전자가 업계에 떠도는 DTC에 대한 평판만 믿고 거래 제의를 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DTC는 앞서 삼성전자에 사내 무선전화기(DECT)를 월 5000대 정도 2년간 납품한 적이 있다. DTC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지만, 박 대표는 “당시 납품실적이나 품질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자부한다. 사업부가 다르더라도 구매 담당자끼리는 통하게 마련이다. TV와 노트북용 LCD만 생산하던 삼성전자는 소형 LCD 사업을 시작하면서 마땅한 위탁가공회사를 물색했는데, DECT 구매 담당자가 “기술 좋고 신뢰할 만한 기업이 있다”며 DTC를 추천했던 것이다.
박 대표는 “현재는 삼성이 요구하는 생산 및 개발 능력을 갖추기도 힘에 부친다”며 “당분간 삼성전자에만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당분간이란 “삼성이 DTC를 버리지 않는 한”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DTC를 버릴 수 없을 거라는 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다.
“LCD 위탁가공은 단순히 부품을 사고파는 거래와 차원이 다릅니다. 개발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기술 교류를 해야 하죠. 기술력과 품질 면에서 삼성전자가 우리를 이만큼 키워놨는데, 쉽게 차버리진 못하죠. 우리도 삼성전자라는 파트너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도록 계속 노력할 거고요.”
 
인터뷰 ㅣ DTC 박윤민 대표
“직원이 행복한 장수기업 만들 터”


박윤민 대표(사진)는 외환위기로 갑자기 일자리를 잃기 전까진 꿈에서도 창업은 생각해본 적 없다고 한다. 그저 LCD가 좋아서 LCD만 보고 쫓아갔는데,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는 것. 몇 년 전부터 “사람마다 그릇 크기가 다른데, 자네는 이만하면 됐으니 감사하며 살게”라고 강조하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 욕심을 버리니 회사 실적이 더 좋아지고, 그 자신도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등 삶이 훨씬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사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무래도 사람 관리다. 믿고 맡겼는데, 기술 노하우를 빼돌리는 이들이 있었다. DTC가 최초의 LCD 모듈 전문 회사라 처음부터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모바일 시장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최근 5∼6년 전부턴 퇴사 인력이 급격히 줄었다. 지금은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삼성전자 요구에 부응하는 것만 고민하면 되니까 좋다.”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능력은 어떤 것인가.
“세계 최고 품질과 순간 생산 능력이다. 계절에 따라 생산 물량이 들쑥날쑥한데, 최대 물량을 제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품질 면에서는 삼성과 거래하면서 다른 어느 기업과 거래해도 손색없을 만한 수준이 됐다. 지금도 여러 기업이 거래 제의를 해오지만 정중히 거절한다.”
삼성 같은 기업이 되고 싶은가.
“삼성전자와 동반성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 나아가려는 삼성이지만 그 안에서의 긴장감과 압박감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다. 삼성처럼 많은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제 할 일하면서 여가도 즐기는, 그래서 출근하는 게 고역이 아니라 즐거운 회사로 만들고 싶다. 그게 우리 회사가 대기업이 될 수 없는 이유라도 상관없다. 꾸준히 조금씩 소걸음처럼 걸어서 장수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벤처기업 창업을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조언한다면.
“벤처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 주위에서 많은 벤처기업이 흥망성쇠하는 것을 지켜본 결과, 흥하는 기업은 대부분 결정적인 기술력을 갖고 시작했다. 자기 길을 열심히 가다 창업하는 거라면 모를까, 창업을 목적으로 아이템을 찾으면 벌어놓은 돈 다 말아먹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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